대한검도회
1947년에 서울시경찰관검도대회가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광복 후 혼란한 시대에 치안의 필요성에 따라 군정 하에 경찰이 탄생하였고 서정학 선생이 주동이 되어 경찰에 상무회가 조직 활성화되었다.
이듬해인 1948년에는 강낙원, 서정학, 호익용, 김영달, 박종국, 김영배 선생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근 100여 명의 사범급 검도인이 창덕궁에서 모임을 가지고 대한검도회를 결성하였다.
1950년 4월에는 제1회 전국경찰관검도대회가 개최되었다. 1952년에는 대한검도회를 창립하기 위해 준비위를 발족시켰으며 1953년 대한검도회를 창립 발족하고 대한체육회의 정식 가맹단체가 되었다.
이때부터 각 시도지회가 산하단체로 설립되기 시작하였으며 제1회 전국개인검도선수권대회를 개최하였다.
경무대에서는 대통령의 생일을 경하하는 무도대회(검도, 유도)가 역시 이 해부터 열렸는데 이는 조선 역대왕조의 선례를 따른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1956년에는 20년 만에 검도가 다시 전국체육대회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고 같은 해에 대한검도회는 아산 현충사에 보관된 채 수백 년 간을 돌보지 않아 부식된 채로 방치된 충무공의 칼을 두 달여에 걸쳐 보수됨으로써 국민 모두가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길을 열었다.(당시 경비는 치안국에서 보조하였으며 보수의 책임자는 김영달 선생이었다.)
1959년에는 회장기 전국단별선수권대회와 전국학생검도대회가 시작되어 검도가 전국적으로 크게 확산되었다.
1964년에는 학생검도연맹이 대한검도회의 산하단체로 가맹되었으며 1966년에는 충무공탄신기념대회가 시작되었다.
1970년에는 학생연맹이 대학연맹과 중ㆍ고연맹으로 분리되면서 각각 산하단체로 등록되었다.
1970년 국제연맹이 창립되었으며 대한검도회는 부회장국으로 가맹되었다.
1972년부터 실시된 소년체육대회에 검도경기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이 해에 한일대학 교환경기가 처음 논의되어 1973년에는 한국의 성균관대학, 부산대학, 영남대학 등 3개 대학의 선발선수가 일본의 동경대학, 관서대학 등과 경기를 가졌다.
1979년에는 동아일보사와 대한검도회가 공동주최하는 대통령기 일반선수권대회가 시작되었고 1988년에는 사회인연맹이 발족되면서 전국의 일반사회인대회가 열리게 되었다.
1992년에는 본국검법 경연대회가 시작되었고 1993년에는 SBS배 전국검도왕대회가 탄생되면서 검도는 큰 전기를 맞게 되었다. 1994년에는 대한검도회가 대한체육회 가맹단체 중 최초로 문화체육부 산하 사단법인체가 되기에 이르렀다. 현재 검도인구는 약60만명, 대한검도회에 등록된 유단자 수는 20만명을 넘었다.
대한검도회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크게 인정받는 경기단체로 국제검도연맹의 부회장, 이사국이며 국제연맹의 지도적 위치에 있다.
대한검도회 주요 업무
- 1 검도에 관한 기본 방침의 결정
- 2 국제경기대회의 개최 및 참가
- 3 단(段) 및 칭호(稱號)의 심사
- 4 회원 단체의 지도 및 지원과 지도자의 육성(사범자격증 발급)
- 5 전통검술, 검법, 검의 연구 및 보급
- 6 경기대회의 개최 및 주관
- 7 경기기술의 연구 및 향상에 관한 사업
- 8 선수의 양성 및 경기시설에 관한 연구와 설치 및 관리
- 9 검도에 관한 자료수집 및 조사 통계
- 10 검도에 관한 홍보 계몽
- 11 검도경기에 필요한 용구의 알선 및 사후관리 점검
- 12 기타 본회 목적 달성에 필요한 사업
- 13 공인도장 허가
- 14 공인심판 육성(심판자격증 발행) 등의 업무를 시행하고 있다.